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
'벗꽃은 피였다' 중에서
이다슬
1948년 5월 13일.
다음 날 아침, 산 위에서 양희는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멀리서, 윙윙거리는 낮은 소리. 그것이 점점 가까워졌다. 비행기였다. 은빛의 거대한 비행기가, 한라산 위를 천천히 그리고 빙빙 돌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계속해서. 프로펠러 소리가 산의 골짜기마다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온 산을 울렸다. 양희가 숨어 있는 골짜기에도, 그 너머의 능선에도, 더 깊은 숲에도. 어디에 숨어 있어도, 그 소리는 들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무언가의 소리. 산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눈의 소리. 산사람들이 동요했다. 그들은 나무 아래로, 바위 그늘로, 동굴 안으로 몸을 숨겼다. 비행기에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나 양희는 알았다. 숨는다고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것은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록하고 있었다. 산의 어디에 사람이 있는지, 어느 골짜기에 연기가 피어 오르는지, 어느 능선에 길이 나 있는지를. 하늘에서, 천천히, 빠짐없이.비행기는 몇 시간 동안 산 위를 돌았다. 양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진우를 생각했다. 진우도 지금 이 소리를 듣고 있을까. 산 어딘가에서, 같은 소리에 심장이 떨리고 있을까. 자신이 숨은 곳이 저 하늘의 눈에 담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 공포를, 그도 지금 느끼고 있을까. 그 시각, 진우는 한라산 깊은 곳에 있었다. 그도 그 소리를 들었다. 프로펠러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며 다가올 때, 그는 글을 쓰고 있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은빛의 비행기가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그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