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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머언 하늘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가느다란 연기 줄기는 어느새 거대한 모습으로 하늘을 집어 삼킬 듯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낡은 유리 창문 사이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 청년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연기는 자연스레 매일 오후 일정한 시간만 되면 볼 수 있었다. 그는 밖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연기를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 숲의 깊은 곳으로 한참을 들어왔다. 바닥은 커다란 바퀴 자국들로 가득했고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잘렸다. 아니, 거대한 괴물이 이리저리 숲을 헤집으며 할퀴고 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랬다. 나무의 기둥 역시 모두 패였고 이곳 저곳에 꺾인 나무 가지들이 팽개쳐져 있다. 갑자기 매캐 한 냄새가 나를 애워쌌다. 황급히 입고있던 옷을 벗어 입을 가리고 누런 연기로 가득한 흐릿한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숲의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갈수록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뜨거워지고 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무언가가 활활 타고 있지만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너무 강한 열기에 주변의 풀 조차 바싹 말라가고 있다. 숨 죽여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본다.

 

거대한 불덩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모든 것을 태운 뒤 잠잠해졌고 그 자리에는 회색의 잿더미만 남았다. 한 사람은 타고 남은 재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다른 이는 호스를 잡아 주고 있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태운 게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그들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초록색 울타리 안에 는 하얀 페인트 선이 선명하게 그어진 잘린 소나무들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잘린 소나무 를 가득 싣고 온 큰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순간, 나를 향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호스를 잡고 있던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한때 공적 영역으로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말은 공적 영역이 사라 지고 있다는 뜻이고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내가 지금 하는 행위는 현실이 아니라 픽션이다.”라고 믿어야 정말 사악해 질 수 있다.

 

단순히 사람이 이기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한 일을 해도 사회적인 기술이 이기적인 기준으로 작동되 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 이 올바른 접근법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내 눈 바로 앞에서 번개가 내리치는데 따르는 두려움은 이내 적응하여 무뎌졌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작업 실 안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을 온 몸으로 맞으며 번개가 쩍쩍 갈라지는 풍경을 즐기고 있다. 깜깜하고 축축한 하늘은 이따금 대낮처럼 훤히 밝아오며 뒤늦게 귀를 자극하는 천둥 소리와 함께 낯선 황홀함을 나에게 준다.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만들고 사람(작가)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에 대해 우리는 비교하며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절대로 제거할 수 없는 잡초에 대하여 우리의 세상과 비교하여 현재 이 뤄지고 있는 절대적 풍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순간에 너희를 기억하며 떠나는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여기저기 상처난 모습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아직 눈물을 감출 수는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지만 기다려 준다면 다시 찾아와 두 손으로 너를 감싸 안아 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곳에는 아이들과 바다가 있었다. 파도가 휘몰아칠 때면 놀란 콘크리트 담벽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앉을 곳을 잃은 나의 갈매기들은 회색의 바닥에 앉아 멍하니 먼 바다만 바라본다. 이곳에 는 물고기와 까만 바위와 작은 게와 보말이 있었다.

 

소나무가 없는 숲은 넝쿨에 점령당한 지 오래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잘 모른다. 소년은 오늘도 5818 소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며 붉은 밤 하늘에 맺힌 별들을 바라본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소년 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급히 자리를 떴다. 하루가 지난 그곳에는 무참히 잘린 소나무가 아무렇게 널부러져 있었다. 그곳은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자주 물을 뜨러 갔던 곳이다. 소나무와 향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어린 소 년은 길을 잃었다. 어렸을 때 보물찾기를 했던 곳은 이제 찾을 수 없다.

 

길을 헤매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른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풍경은 이미 사라진 지 오 래이다. 나무들은 서벅서벅한 모래 위에 뿌리를 내려서 겨우 지탱하고 있고 바다를 건너 온 넝쿨식물들은 나무 들을 타고 올라가 숲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호텔은 이제 모두 떠나고 비둘기와 풀이 모든 것들을 점령했다. 유리창문을 깨고 기어 올라간 녀석들은 호텔의 거대한 벽을 잠식했다. 사람들은 내창에 콘크리트를 들이부었다. 바닥에는 서로가 엉켜 붙어 균열이 생겼고 비만 오면 마을이 떠나갈 정도로 울어 댔던 개구리들은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저 멀리 나무 숲 사이로 을씨년스러운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행히 아직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여기저기 남아 있는 노루의 흔적은 조금 두렵 다. 어딜가나 볼 수 있었던 울창한 소나무들은 이제 볼 수 없다. 하나 둘 병들어 밑둥이 잘리고 갈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산처럼 쌓여있다. 밀려드는 자본과 사람들은 미친듯이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금새 콘크리트로 뒤덮였고 내가 봤던 어린 기억 속의 밭담과 밭은 사라지고 없다. 어떻게 알았는 지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의 찌꺼기를 먹기 위해 수많은 갈매기들이 내 주변을 경계하며 달려든다. 겨울 파도는 두려울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했으며 바람과 함께 모래는 점점 황폐히 쓸려 나갔다. 흐르지 않는 바닷물 은 보기 좋게 부풀어 노랗게 익었고 작고 길쭉한 모양의 고둥들은 그 위를 터전 삼아 모여있다. 커다란 나무는 여지없이 잘려 나갔고 수많은 쇳줄기가 갯바위에 박히고 바다 위로 거대한 안테나가 우뚝 솟아 올랐지만 언제 부터인지 이조차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은 땅과 그 위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다룰 때 전혀 윤리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에게 땅이란 오딧세이의 노예 소녀와 마찬가지로 말 못하는 재산일 뿐이다. 사람들은 특히 토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경제적으로 생 각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의무는 없고 특권만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레오 폴드 1949 : 정화열 1999 : 189 재인용-

 

요란한 태풍 바람과 함께 파도가 치면 붉은 하늘에 까마귀와 황금색 파리들이 날아다녔고, 눈으로 뒤덮인 기암 절벽에는 폭포가 얼어 붙었다. 연신 귓가를 때리는 풍력발전기 소리. 나는 동굴로 들어간다. 귀신에 홀린 미친 대나무 밭. 그리고 노랗게 익은 유채밭과 억새밭. 나를 맞아주는 수족관 안의 동물들.

 

작업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고 그를 표현하는 방식도 많이 변했다. 나는 노란색 지붕 아래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꿈꿨다.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

 

단편적인, 분해된, 조각으로 나누어진, 개별적인, 알 수 없는 형태가 불분명한 이미지들의 조합                                                                                                                 – 디지털화 된 풍경

 

2021년 6월 22일 화요일 22:50

오름에 올라가는 사람들 모두 옷을 잘 갖춰 입고 있어서 그들의 모습이 매우 낯설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 리는 이유는 유명 연예인이 그곳을 배경으로 텔레비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얇은 샌들을 신고, 굽이 높 은 구두를 신고도 그 높은 오름을 잘도 올라간다. 어떤 이들은 비치 파라솔을 펴고 돗자리를 깔아 준비한 소품 을 펼쳐 놓고 분화구 옆에 한 상을 차렸다. 그리곤 이내 자리를 옮겨가며 그 날을 기념한다. 벌떼처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름의 깊은 곳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내려간다. 그리고 들어 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밟고 있는 붉 은 땅이 원래는 초록색이었다는 사실은 모른다. 빠알간 길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아주 깊고도 선 명한 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내 하얀색 강아지와 그 주인이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며 주변 사 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 둘은 분화구에 있는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곳에 있는 모든 카메라 들이 그렇게 다시 한 곳으로 향했다. 오름의 능선에는 의식하지 않는 듯하지만 서로를 의식하며 흘깃흘깃 주위 를 쳐다보는 사람들로 여전히 가득하다.

 

2021년 2월 1일 월요일 23:17

나는 아직도 도전할 준비가 되었는가.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23:23

 

얼마전 작업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삭발을 했다. 삭발 기계가 없어서 전기 면도기와 문구용 가위를 사용해 서 머리를 깎았다. 처음으로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이발을 했는데, 미용실 비용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내 얼굴 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움직여가며 여러 방향에서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자화상을 한창 많이 그렸던 20대의 나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하지만, 마흔두 살 나의 모습이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22살의 내 얼굴과 비슷한 부분이 조금은 남아 있 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2021년 1월 8일 금요일 21:29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풍경을 앞에 두고 나가지 못하는 것은 무척 괴롭다. 지금까지 생존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 일인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이다.

 

2021년 1월 4일 월요일 22:53

애월 해안도로에 조명탄으로 환하게 밝혀진 바다가 장관을 이룬다하여 급히 촬영 준비를 하고 나갔지만 볼 수 없었다. 대신 네 명의 잠수부 꾼들이 문어 잡이를 위해 아주 밝은 랜턴을 머리에 매달고 밤 바다를 휘젓고 다 니는 모습을 꽤 오랜 시간 동안 바라봤다. 구엄리 어촌계 아주머니가 바닷속에 있는 작살을 든 사람들을 불법 이라며 구경하는 내내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탓에 한동안 귀가 멍했지만, 작업실로 돌아와 촬영한 사진을 보니 그들의 모습이 볼만하다.

 

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09:36

무심코 지나쳤던 감정의 상태를 기록한 이미지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작업의 시작을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 기도 한다. “Hold me tight_no.41”은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진이지만 그래서 no.41은 의미가 없기 도 하다.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00:24 일요일 오전 6시에 올라가기 시작해서 오후 2시 30분에 내려왔다. 지난 일요일 백록담에 다녀오고 이번에는 돈 네코 탐방로를 다녀왔는데 목적은 하나였다. 백록담의 남벽, 그 절벽이 보고 싶었다. 산중턱부터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 때문에 아이젠도 착용했으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도 새로 준비했다. 여벌의 옷은 챙기지 못했지 만 두꺼운 장갑과 함께 신경 써서 옷도 겹쳐 입었다. 하지만 남벽은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인해 볼 수 없었다. 계속 내리는 눈으로 머리가 많이 젖었고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젖은 이후, 영하의 날씨로 모든 것이 얼 어버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상의가 모두 젖어서 평괘대피소에서 젖은 옷을 모두 벗고 얇은 셔츠 하나만 입었다. 혹시 몰라서 준비한 털모자는 썼지만 젖어버린 두꺼운 장갑은 여유분이 없어서 대충 말리고 다시 꼈다. 돈네코 탐방로는 예상보다 힘들었다. 지난 백록담 코스보다 30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짧은 코스가 아니었다. 길이 좁아서 등산 스틱을 짚을 만한 여유 공간도 별로 없어서 산행 중간 이후부터는 아예 스틱을 집 어넣고 카메라만 꺼내서 촬영하며 올라갔다. 남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본 눈 내린 한라산의 풍경은 무척 신비로웠다. 안개가 살며시 걷히면서 그 자리를 비추는 얇은 햇살이 산의 능선을 보여 주는 순간은 정말 인상깊었다. 처음 보는 것, 낯선 것, 그럼에도 기분 좋은 것, 그리고 질문을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서, 무엇을 찾고 싶 어서 산을 올랐을까.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16:48

일요일 어제, 즉흥적으로 백록담을 다녀왔다. 오전 6시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관음사엔 오후 3시쯤 도착했다. 올 라가는 데 3시간 30분, 내려오는데 5시간 30분, 총 9시간을 걸었다. 원래는 몸을 좀 풀 겸 성산일출봉만 다녀 올 생각이었지만 매번 용기를 내지 못해 미루는 것 같아 고민없이 한라산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매일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지 상상만 해오던 한라산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산이 몹시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한라산의 시선에서 매번 벗어나고픈 생각에 성인이 되고 바로 제주를 떠났다. 겨울의 아침 6시는 매우 어둡다. 준비해 온 랜턴을 머리에 달고 깊은 숲 속을 나의 숨소리만 들으며 계속 걸었 다. 서서히 해가 나타나며 붉은 노을 같은 하늘이 보이더니 그제서야 주위의 사람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 다. 길고 긴 숲을 계속 걸어 하늘이 보일 때 즈음, 머얼리 백록담이 보였다. 책에서만 봐 왔던 구상 나무들은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하얀 나무들은 하얀 숲을 이루었고 그 틈으로 난 산길을 통해 백록담에 오른다. 눈 아래 펼쳐진 대평원과 멀리 보이는 서귀포, 드넓은 바다는 나의 발걸음을 계속 붙잡았다. 백록담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길은 다른 곳에서 경험했던 등산로와는 매우 달랐다. 엄중하며 신성했다. 거칠게 다듬어진 바위 절벽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가까이 보고 싶었던, 멀리서만 보아온 희미했던 그 바위였다. 힘들어서 빨리 올라갈 수도 없었지만, 빨리 오른다 해도 쉬이 허락하지 않았을 한라산 정상의 모습은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공기를 압도했다. 멀리 보이는 분화구의 능선은 용눈이를 닮았지만 가까이 있는 서쪽 능선은 매우 사납다. 백약이와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그 크기가 모든 숨 쉬는 것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렇게 한 눈에 들어 오지 않는 내 앞의 거대한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다. 내 시선을 모두 품은 백록담 앞에서 희미한 눈물이 흐른 다. 그동안의 경솔함과 자만 섞인 선입견들을 들추어 그곳에서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아빠와 엄마가 젊었을 때 찍었던 빛 바랜 사진 속에는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분화구 안에 들어가서 백록담의 능선과 하늘 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이 간다. 하산 코스로 정한 관음사 탐방로는 매우 거칠고 웅장했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제주의 풍경을 갖고 있었다. 내려오는 내내 왼쪽으로 보이는 북벽의 모습은 나의 발걸음을 무척이나 더디게 했다. 그리고 이내 마주한 왕관 릉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연신 감탄사만 나오게 만드는 절경이었다. 이토록 장엄하며 영험한 기운을 내는 풍경 이 존재할까. 산을 오르고 내릴 때, 중간 부분부터는 카메라만 손에 들고 움직였다. 성판악에서는 괜찮았지만 스틱 없니 내려 오는 관음사에서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상당히 경사진 곳이었고 게다가 나의 무릎과 발목은 다른 사람들과 달 리 연골이 모두 닳아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고통이 극에 달했다. 삼각봉이 보이는 곳까지 어찌어찌 겨우 내 려왔다. 하산할 시간이 됐기 때문에 결국 삼각봉 대피소에서 스틱을 다시 꺼내 들었다. 관음사 길은 매우 가파 르고 거칠어 스틱이 있어도 무릎과 발목에 매우 치명적이다. 낙오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포기 하고 싶을 정도였다. 성판악과 달리 모든 길이 돌밭이었고 거기다 눈이 녹아 살짝 얼음이 덮혀 있어서 매우 미 끄러웠다. 여러 번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다리에 쏠리는 체중을 분산하기 위해 거의 모든 힘을 스틱에 줬더니 이제는 어깨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5시간 30분을 걸어 내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당시의 내 모 습을 보았다면 분명 70대 노인이 그나마 성한 긴 두 팔을 옆으로 벌리며 거미처럼 걷는 모양새라고 할 지경이 었다. 관음사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차가 있는 성판악으로 향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제주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한라산에 폭설이 내리고 있다.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12:13

모든 방향에서 소리가 들린다. 특히 아주 작은 소리들이 더욱 잘 들린다. 하늘 멀리 보이는 헬리콥터 소리가 매 우 크지만 작업실 밖에서 나무 이파리들이 벽을 긁는 소리가 가장 매섭게 들린다. 여기저기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바람이 불면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나를 짓누른다. 좁게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넘어 오는 바람에 잿빛 커튼이 이리저리 벽을 타면서 또한 소리를 낸다.

 

2020년 11월 16일 월요일 19:20

20대 시절 함께 했던 오래된 만년필이 하나 있다. 수북히 쌓인 먼지를 털고 내부를 청소하고 다시 잉크를 넣고 몇 자 적어본다.

 

2020년 11월 15일 일요일 10:42

“이제 제주섬은 여기저기 독버섯이 피어나듯 외지 자본에 절경들을 장악 당한 채, 부정한 풍요의 기운에 휩싸 여 떨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제주의 것이 아니다.”

                                                                                                                                                                                                                                                                    -풍경의 깊이 p137, 강요배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02:05:32

하지만 부정한 풍요의 기운에 휩싸인 풍경일지라도 이제는 제주의 풍경이다.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10:03

수많은 망설임의 순간에 대하여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역시 많은 망설임 속에서 헤매고 있다. 빛이 어슴프레 보이는 저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 왔지만 아직도 얼마나 더 가야할지 모른다. 단 한번, 100일 동안 포기하고 다 른 길로 들어가 봤지만 이내 돌아왔다.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02:08:01

어쩌면 다시 다른 길로 가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것 같다. 착잡하다.

 

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12:03

갖고 있던 장비를 모두 처분하고 마음의 짐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 했다. 실제로 어딜가나 주위를 냉철한 시선 으로 돌아보거나 살펴보는 행위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저 모 습은 제대로 담아서 작업하고 싶은데 그냥 지나쳐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몹시 공허하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풍 경은 쉽게 다시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기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가버린 풍경에 대해서 곰곰 이 되새겨보고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공간에서 내가 바라보고 느꼈던 장면의 부족한 것과 과한 것들 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한 풍경 안에서의 내 존재와 위치에 대해서 더욱 깊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장비가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프다.

 

2020년 11월 4일 수요일 23:19

책을 읽는 속도와 집중력이 꽤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는데 최근에야 그 이유를 찾아 고쳐 나가는 중이다. 휴대 전화를 보는 시간과 컴퓨터의 사용을 절제하고 있다.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도 매번 챙겨서 한 줄 한 줄 읽고 있으며 가끔 집으로 오는 광고 지나 우편물도 시간을 내서 읽고 있다. 이런 시도는 생각보다 큰 변화를 준다. 사고의 범위가 유연해지고 상상 의 시간도 예전보다 길어졌다. 이는 중단 상태인 내 작업의 지속성에도 크게 영향을 줄 것 같다. 풍경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결과물이 사진이 아니더라도 시각적 예술 작품으로 변환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3일 화요일 22:11

다시 두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새 바람은 부쩍 차가워졌고 바다의 색은 회색으로 변했다.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해졌다.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쓰고, 다시 생각하며 산만하게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 시 내가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얼마전 시골에 있는 작은 규모의 레지던시 공간에 가서 전시를 보고 왔다. 작업을 하고 있는 그곳의 작가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멀리서 바라보는 작가들의 생활 공간과 작업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두서 없는 이 짧은 글 을 쓰기까지도 난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이토록 게을렀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지난 날의 무기 력함을 이겨낼 수 있는 생각의 틀이 다시 잡히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시대가 변함을 인지하고 비판적 인식을 잊지 않은 채 냉철히 흐름을 파악하자.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02:22:26

무척 부러웠던 그곳에 앉아있다. 그리고 지난 날 하염없이 추락해가던 상황에서 썼던 글들을 다시 돌이켜 보고 있다. 지워야 할 글도, 새롭게 써야할 글도 있지만 그 글들과 함께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개인전을 마쳤 다. 태풍이 지나가던 전시의 마지막 날, 마지막 관람객인 김종엽씨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보통 사진으로 표현 이 안되는 것들을 글로 쓰거나 글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것이 사진인데, 작가님의 사진과 글은 이 모두의 영역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11:30

나보다 하루 일찍 입사했던 동료 직원이 오늘 퇴사했다. 24세의 젊은 친구는 꽤 열심히 하려 했고 그 나이에 벌 써 집도 가지고 있는 멋진 직장 동료였다. 스물네 살의 나는 군대에 있었고 열정만 넘쳐서 말로만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며 내가 대단한 줄만 알았다.

 

2020년 6월 30일 화요일 10:11 직장에 출근한 지 꽤 됐다. 어느정도 적응했고 생전 안 해본 여러 일들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오전 6시 50분 에 본점으로 출근해서 촬영을 했고 편집까지 모두 마쳤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제품 촬영을 한 번 더 하고 오 후 4시에 일찍 퇴근할 예정이다. 좋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잠을 자고 있던 시간에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던, 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21:36

생애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마음의 준비는 모두 마쳤다.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11:22

장마가 시작됐다. 종이가 눅눅해서 잉크가 마르질 않는다. 취업 지원서를 몇 군데 넣었고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1차 방문 면접, 2차 작업실에서 면접을 봤다. 결과적으로 다음 주 수요일부터 정식 출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게 옳은 결정인지 모르겠다. 두려움이 가득하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지냈던 모든 기억과 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에 비가 가득하다.

 

2020년 6월 4일 목요일 18:37

모든 것들을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나란 사람에 대해서 특히 스스로 믿고 그러려니 하던 점들을 모두 버 리고 새롭게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당연시 했던 것들,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상대방의 배려에 감춰져서 드 러나지만 않았을 뿐, 썩은 종기처럼 내 몸 안에서 아주 깊게 곪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종기가 터졌고 너 무 커서 도저히 닦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사진 속의 가족이다.

 

2020년 6월 3일 수요일 18:34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점인 것 같다.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작 업을 중단한다. 요 며칠 목감기가 심해서 잠도 못 잤고 병원도 다녀왔지만 결국 나아지지 않아서 내일 종합검 진은 취소했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두려움.

 

2020년 5월 28일 목요일 20:27

원래는 이곳에 조금 큰 나무가 있었다. 구럼비 나무, 또는 까마귀쪽 열매 나무라고 불리는 녀석인데 내가 이곳 에 집을 짓고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봐 왔던 친구이다. 아, 녀석은 내 땅에서 자라는 친구가 아니다. 옆의 땅에서 자라고 있던 녀석으로 나에게는 그 어떤 권한도 없다. 그런데 오전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검정색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아저씨가 나무를 사정없이 전기 톱으로 베어내고 있었다. 요즘은 구럼비 나무의 열매가 까 맣게 익어가는 계절이라 바닥에 떨어진 녀석의 검은 열매가 수북했다. 그 친구가 잘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 밭은 아니지만 밭 입구의 왼쪽에, 모퉁이에서 수줍게 자라고 있었고 그래서 드나드는데 큰 방해가 되지도 않았 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심어지고 버려지는 것들, 존재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 각해 본다.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농사꾼(난 농부라 부르지 않는다)들을 혐오하고 기피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2020년 5월 27일 수요일 22:11

달팽이 잡는다고 사방에 빙초산을 뿌려 댔더니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모든 것이 낯설다. 온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곳 풍경은 다가오는 모든 것을 날카롭게 경계하는 모습이다. 나무 숲을 들여다보기 위해 비춘 불빛은 오히려 나의 모든 것을 발가벗겨 비추는 듯하다. 이 순간만큼은 수없 이 이곳에 왔던 나도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다. 나뭇잎과 꽃잎이 날이 바짝 선 칼끝처럼 작은 바람에도 예민하 게 움직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숲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조심스레 숨 쉬는 것 뿐이다. 숲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산이 들어섰다. 20년간 천천히 쌓아 올렸다는 산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보름 달이 떠야 가까이서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다. 낯선 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주위에 심어 놓은 동백나무와 울 타리는 넝쿨로 뒤덮였다. 희미한 달빛을 따라 들어가니 그 빛에 반짝이는 산의 모습이 보인다. 산은 온갖 쓰레 기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폐기물 밖에 없는 이곳에 달빛만을 반기는 노오란 달맞이 꽃들이 가득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 산을 작은 오름으로 착각할 정도다. 정상까지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서서히 고약한 냄새가 나 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과의 약속과는 달리 쓰레기는 여전히 쌓아 올려지고 있다. 멀리 밤바다가 화려하다. 환하게 넘실대는 녀석이 아주 황홀하게 나를 홀린다.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22:22

이틀 전에 데리고 왔던 다람이가 떠났다. 5월 5일에 태어나서 이제 막 20일이 지난 아기 고양이였는데 딸 아이 가 다람쥐 같다고 다람이라 이름을 지어줬던 아이가 병원에서 진찰을 기다리던 중에 숨을 멈췄다. 아내는 고개 를 숙인 채 울고 있었고 의사는 무덤덤하게 그런 아내를 바라봤다. 다람이가 어디가 아프냐고, 이제는 병원에 다녀왔으니까 아픈 거 괜찮냐고 물어보는 딸 아이의 걱정 어린 말이 너무 아프다. 차갑게 식어버린 다람이를 담요로 감싼 아내는 계속 울고 있다. 집에서 돌아와서 나는 예전에 따로 보관해 뒀던 바르게 다듬어진 돌을 꺼 내어 핫팩을 넣고 담요와 함께 묻어주고 다시 돌을 놓았다.

 

2020년 5월 20일 수요일 21:50

민달팽이. 녀석만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로 인해 얻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열흘 전 부터 텃밭을 점령하고 있는 녀석들로 인해 이미 채소들은 전멸했다. 특히 비타민은 온전히 자라고 있는 게 없 으며 상추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하나하나 젓가락으로 잡다가 지쳐서 식초를 뿌리기 시작했고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해만 지면 슬금슬금 기어나와 돌나물과 미나리는 물론 오디 열매와 레몬꽃, 귤나무 이파리, 심지어 수국 잎사귀까지 모든 것들을 갉아 먹고 있다. 너무 화가 나서 식초 원액 을 텃밭 주변과 농작물에 뿌렸는데 텃밭 작물과 미나리가 모두 말라 죽었다. 식초가 워낙 강해 그렇게 된 것으 로 보이는데, 결국 다시 토치를 집어 들고 하나하나 태워서 죽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텃밭 한쪽에 눕혀 놓았던 샌드위치 판넬 밑에는 대가리가 세모 모양인 뱀이 또아리를 틀고 날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내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크고 징그럽게 생긴 지네가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주위로 달팽이들의 숫자도 어마 어마했다. 지네는 보자마자 불로 태웠지만 뱀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도망쳤다. 이따가 자정이 되면 다시 불을 들고 돌아봐야겠지만 너무 끔찍하다. 살생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어딘가에 숨어서 또아리를 틀고 있을 뱀 생각 에 소름이 돋는다.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22:02:34

뱀을 본 이후로 여자 아기 고양이 키키를 입양했다. 키키가 살면서 그 이후로 뱀을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현 재 마당에는 키키를 비롯한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키키의 고양이 6마리가 태어나 활보 중이다.

 

2020년 5월 13일 수요일 21:25

가급적 같은 날 글을 다시 쓰는 것을 자제하려 했지만 마음 둘 곳이 없어 이곳에 고해성사 하듯 다시 쓰고 있 다. 잠을 푹 잤던 기억이 아주 오래됐다. 잠을 자기 위해 일찍 누워 봐도 새벽 1시가 되면 여지없이 눈이 떠진 다. 극도로 몸 상태를 피곤하게 만들어도 똑같다. 늦게 잠을 자면 아침까지 자야 하는데 여러 번 깬다.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원인임을 알고 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이유없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2020년 5월 12일 22:44

아주 깊고 험한 돌 바위 숲을 지나 신비롭게 생긴 거미들을 피해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같 은 길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지난 해 한라산 깊은 숲 속에서 들었던 알 수 없는 동물 소리가 이곳에서 도 들린다.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에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했고 이따금 달을 가리는 흘러가는 구름이 을 씨년스러울 정도로 차고, 무거운 공기가 땅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이 내린 이곳의 지형 은 달이 환하게 비출 때 겨우 볼 수 있다. 하지만 풍경을 보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 에 온 몸과 신경이 쭈뼛쭈뼛 곤두선다. 모든 것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 나 역시 그럴 때는 작업을 멈추고 아주 낮은 자세로 사방을 응시한다. 그리고 예의 주시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30초의 촬영 시간에는 나 역 시 30초 동안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다. 1년만에 이곳의 풍경은 변했다. 아니, 변했다기보다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내가 알고 지냈던 도 토리 나무와 삼나무들이 없어졌고, 하나 있던 구불구불한 소나무도, 흐드러지게 이곳저곳에 피어났던 산수국도 없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살랑살랑 나를 맞이했던 풀잎 소리도, 작은 벌레들의 간지러운 발자국 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길이 났고 커다란 나무들은 투박하게 잘린 채 여기저기 잔뜩 널 부러져 있다. 멀리서 바람이라도 불어올 때면 벌써부터 시멘트 먼지가 숲이 있던 자리를 가득 메운다. 안개가 자욱한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달은 구름에 가렸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온 몸은 식은 땀으로 흥건하다. 누군가 멀리서 콧노래를 흥얼대며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몸을 바짝 엎드려 이 순간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2020년 3월 23일 월요일 22:21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쓰기를 하겠다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22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사건과 일들은 쓰고 싶지 않다.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마음을 추스려야 할 것 같다.

 

2020년 3월 20일 금요일 20:07

무당이 된 초등학교 동창 여자 친구와 45분간 통화했다. 녀석은 미스 감귤 아가씨 ‘진’ 출신이다.

 

2020년 3월 19일 목요일 11:16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늦게 잤고 늦게 일어났다. 아침 일찍부터 예상했던 강한 바람은 생각보다 차분하 다. 2년 전까지 거르지 않고 썼던 영농일지를 보면 그날의 날씨와 생각들이 꽤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방금 아로 니아 밭을 멀리서 지켜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핑계 거리를 만들며 이 친구들에게 소홀해 왔는지 확인했다. 몇몇 나무는 아예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에 갇혔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로니아와 잡초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아직 하늘은 많이 어둑어둑하고 흐리지만 바람은 여전히 낮고 잔잔하다. 흐릿한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펴 보지만 찾을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가 나를 에워싸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든다. 바다 너머 먼 하늘이 무언가로 가득하다.

 

2021년 8월 25일 수요일 21:01

펜이 없을 때마다 휴대전화 안의 채팅 상대였던 나에게 보냈던 글들을 다시 옮겨 적는다. 풀과 대화하는 방법, 풀처럼 유연해지는 방법, 풀처럼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 아무리 짓밟혀도 풀처럼 다시 일어서는 방법. 하지만 풀에 줄 물은 전 날 미리 받아 둔다. 삶은 정말이지 모순으로 가득하다. 몸이 망가질 정도로 풀을 뽑으면서도 잡초의 씨앗을 받아 잡초를 키우고 있 는 나를 보면 한심해질 때가 많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작년에 병원에 갔더니 70세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골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나아질 수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해서 며칠 동안 만이라도 아프지 않게 물리 치료만 받고 나왔다. 칼라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데, 사실 죽은 풀은 색이 없다. 그래서 그 풀이 흑백으로 보인다면 어떨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남중, 남고를 거치면서 예의를 갖춘 그리고 모범적인 단정함의 잣대는 아주 견고하 게 작동했다. 머리는 6년 동안 항상 빡빡이였고 다림질이 잘된 말끔한 교복과 검정색 단화, 그리고 하얀 양말은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통일된 패션 규칙이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있었고 그렇게 친했던 초등학교 여자 친구들을 골목길에서 자주 마주쳐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금 그랬다면 휴대전화라도 보면서 모른 척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무척이나 반갑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렇게 나는 이상한 남자가 되어 버렸고 우리들은 모두 비 슷하게 성장을 했다. 모두가 암묵의 약속을 한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초등학생이 아니라고, 그래서 남 학생은 남자들끼리만 말을 해야 한다고. 그 시절의 나는 저항하며 발버둥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보다 용기 있던 친구들은 그 살얼음 같았던 시간에도 가끔 이탈을 했지만 나는 그저 바라만 봤다. 나에게 야자 땡땡이와 당구장, 술과 담배, 여자 친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맨 뒤에 앉았던 친구들은 언제나 그런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래 서 혼자 할 수 있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다행히 중학교 입학해서 첫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 전공이어서 피아 노와 선생님의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지금의 ‘제주 국제 관악제’를 만드신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당시의 음악실은 실로 웅장했다. 음악 시간만 되면 40명이 넘는 친구들은 모두 그 음악실 홀 에 앉아 커다란 오디오로 선생님께서 틀어 주시는 클래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클래식을 들을 때면 그 때 생각이 많이 난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매우 극소수의 친구들만 그 시간을 좋아했다. 대부분 잠을 자거나 몰래 음 악실 밖으로 나가 라면을 먹었다. 

 

나는 실제로 이탈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음악을 통해서라도 많은 일탈을 상상했다.

 

78만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촬영은 언제나 어렵다. 그 어려움은 촬영의 방식이 아닌 촬영 그 자체에서 시작한다. 사 람들의 눈에 띌까 봐 조마조마하는 나의 태도에 행여나 그들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아닐까 두렵다. 그래서 그 시작이 매우 오래 걸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로 만들어진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 인스턴트적인 공간, 편안해 보이지만 매우 불편한.

 

설탕, 샐러드 소스, 샐러드 채소, 믹스 커피, 라면, 두부, 순두부, 굴 소스, 요구르트, 복숭아

 

2021년 9월 24일 금요일 00:50:14

지난 20일 밤, 도심 한복판에 버려진 들개처럼 그 무엇을 찾아 집을 나섰다. 이곳에서 2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빠르게 지나가는 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들, 그리고 노란 창문들, 나는 왜 그곳에 속해있지 못하고 떠나는 걸까. 수 없이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만약 이대로 도망가면 내일 어떤 일이 벌 어질까.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추석 명절 전날 인데도 야영하는 사람들과 캠핑하는 사람들로 이미 이 곳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한바퀴를 빙 둘러 보아도 내가 마음 놓고 앉아 있을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에둘러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곳은 아이 들과 함께 바다를 보았고 하늘을 향해 맘껏 소리 질렀던 행복한 곳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다행히 이곳에는 나 뿐이다.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만 존재하는 곳이다. 시커먼 밤 풍 경 안에 거대한 일출봉이 희미하게 나를 지켜볼 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없다. 바람 소리에 가려 가까운 곳의 바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났다. 다시 방향을 잡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동쪽의 바람은 서쪽의 바람과 다르다. 아주 날카롭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린다. 경찰차가 집 앞에 있다. 경찰관 두 명과 아버지, 매제와 둘째를 안고 있는 아내가 무언가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 를 하고 있다. 이틀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서 실종 신고를 한 모양이다. 나는 가족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추석 명절 날, 집안 분위기는 남편 하나 때문에 쑥대밭이 됐다. 경찰 역시 나에 게 전화를 걸어 왔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받지 않더라도 위치 추적이 가능한가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CCTV 로 지켜봤던 경찰관 두 명이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 주위를 몇 바퀴 돌아보더니 운 전석에 앉아 있던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남편은 창문을 열었다. 텁텁한 아침 공기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바깥 바람도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진한 안개가 가득한 밤이다.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15:00:19

한적한 시골 마을 운동장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개는 잔디밭에 앉았고 더러는 누웠지만 나는 나무 뒤 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따뜻하고 시원한 햇빛에 반짝이는 작은 금색 종을 들고 한 여인이 등장한다. 숲 의 이곳저곳을 위로하듯 위와 아래를 오가며 종을 친다. 그리고 여러 개의 유리 항아리가 있는 곳에 앉아 연주 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이내 일어나 맨발로 걸어 다니며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람과 누워 있는 사람들의 곁에 서 나지막하게 다시 종을 울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살을 타고 바람이 넘나든다. 여인이 울리는 그 작은 소 리도 바람을 타고 멀리 있는 내게까지 온다.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22:26:57

잡초 재배 일지를 먼저 쓸까, 아니면 에세이를 먼저 쓸까?에 대한 고민을 20여분 동안 했다. 에세이를 먼저 쓰는 이유는 그 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최대한 글로 담아보려 함이다. 2002년 미술대학에 들어갔을 때, 내 나이는 23살이었다. 남들보다 3년이 늦은 셈이다. 일반고등학교에서 의대 를 목표로 인문계도 아닌 자연계에서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두 번이나 떨어졌다. 수능 점수에 맞춰서 건축 과를 갔지만 입학하고 두 달 만에 내 생일을 기념하여 자퇴를 했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판단하여 바로 행동으로 옮긴 날, 21살이었다. 조금은 보수적인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 또한 나의 모든 행동에 허락 이 필요했다. 당시에 용돈을 받으면서 계획적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지르는 행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돈을 타 서 썼다. 거짓말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성적표는 꼬박꼬박 부모님께 드렸고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갔다.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반장을 했다. 물론 12년동안 결석이나 지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직도 그 때의 수 많은 임명장과 개근 상장은 보관하고 있다. 중학생 때는 학교 바 로 옆에 있는 향교에서 훈장님께 한자를 배웠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99%의 한자는 모두 그 때 배운 것들이 다.) 또한 미술부와 문예부를 같이 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는데, 당시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그린 그림 한 점이 대전 엑스포에 영구 설치됐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사건으로 당시 상당히 비싸게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한 아크릴 물감으로 정사각형의 타일에 그림을 그렸다. 전국각지에서 뽑힌 수 많은 학생들의 그림을 광장에 설치 된 벽에 타일로 장식하는 프로젝트다. 제주에서는 내가 유일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는 사실 별로 재 미가 없었다. 너무나 폭력적이었고 강압적이었다. 선배들은 우리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나 있었고 우리들은 고3이 될 때까지 언제나 고개를 숙인 채 눈에 띠지 않게 다녔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 고등학 교는 모두 축구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게 단순 한 축구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재학생들은 프리미 어리그나 K리그에서도 보지 못하는 매스 게임 (Mass Game)을 해야만 했다. 축구 대회가 열리는 시즌마다 나와 나의 친구들과 후배, 선배 모두는 운동장에 나와서 카드를 들며 20개가 넘는 이미지들을 위한 동작을 암기해야만 했다. 고등학교 때도 미술부 활동을 했는데 나도 몇 가지 이미지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디자 인 했지만 총학생회는 나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고생해서 응원을 해서 이기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대 학교 선배들의 집단 구타와 욕을 피해서 숨어서 다녀야 했고, 지면 학교로 돌아와 선배들 의 구타와 욕을 꽤 오랫동안 받아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나 답답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갔고 나는 재수를 위해 서울로 갔다.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11:45:31

서울에서의 생활은 모든 낯선 풍경에 나를 동화시키는 데부터 시작됐다. 겨울의 바람은 제주와 바람과 사뭇 달 랐다. 제주의 겨울 바람은 매섭게 불더라도 살을 스쳐 지나가는 차가움이 오래가지 않았지만 서울의 겨울 바람 은 한동안 달라붙어 살을 에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만석이형 네 집에서 살았다. 만석이형은 엄마의 오빠의 큰 아들로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나왔고 나와 같이 살았을 때는 형수님과 원룸에서 단 둘이 지내고 있었다. 안암동의 좁은 주택가 한 켠에 있는 원룸에 만석이형과 형수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 일 년이 조금 지나고 원룸에서 방이 3칸이 있는 빌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때는 형수 님의 남동생 중 큰 남동생, 대호 형도 함께 살았다. 대호 형은 경찰 공무원 공부를 위해 서울로 왔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서는 영등포 신길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대호 형은 제주로 갔고 대호 형의 동생, 대석이 형이 왔다. 대석이 형은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왔었는데 나는 그렇게 사돈네 형제와 2년을 살았다. 지금도 제주에서 가끔 큰 잔치나 가족 모임이 열리면 사돈네 식구들을 만날 수 있는데 대석이 형, 대호 형과 어머님(사돈댁 어 머님도 서울에 자주 오셨기 때문에 친하다.)을 뵈면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한다. 최근에 본 게 몇 년 전, 큰 삼 춘(만석이형 아빠이자 엄마의 큰 오빠) 돌아가신 날이었는데 그 날에는 만석이형네 두 딸과 대석, 대호형네 아이들까지 모두 와서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큰 삼춘은 나와 연이 깊다. 지난 17일 글에서 적어 보려 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제 그 글을 써본다.. 철없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큰 삼춘이 그 학교에 계셨다는 것이다. 큰 삼춘은 오랜 시간동안 그 학교에서 목수로 계셨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 많은 만석이 형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는 데 그 때도 계셨다고 들었다. 큰 삼춘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출근을 하셨고 항상 등교길에 청소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항상 나를 보면 반갑게 웃으시면서 말(“어 어,, 다 다다슬이 와 완?”)을 건네 주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많이 불편했다. 큰 삼춘은 한 쪽 다리가 불편하셨고 말을 더듬으셨다. 친구들은 학교 목수를 보며 항상 놀 렸고 조롱까지 했다. 나는 감히 그 앞에서 “그러지 마라, 내 삼촌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는데 그 때의 나는 매 우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다. 큰 삼춘은 조카인 나를 매우 자랑스럽고 사랑하셨다. 학교 선생님 몇 분은 나를 교무실로 조용히 불러 학습지를 주셨고 그 때마다 큰 삼춘 이야기를 하셨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3년 동안 학교에서 큰 삼춘과 대화를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또한 지금의 나를 후회하며 반성한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큰 삼춘한테 가서 점심 사달라고 했을텐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귀덕리 마을에 처음 집을 짓고 농사를 할 때, 마을 분들이 나를 경계하셨는데 그 때마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길성이 삼춘네 조카마씨.”라고 했다. 그제야 삼춘들은 나를 알아보시고 오고 가며 온갖 채소를 문 앞에 두고 가셨고 항상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셨다. 길성이 삼춘은 돌아가신 큰 삼춘이다. 여기 귀 덕리가 고향이고 내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글을 쓰며 이렇게 참지 못할 눈물을 흘려본 적이 또 있던가.

 

 

 그가 이 숲에 처음 발을 디딘 건 7년 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흔적이 없는 그곳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 있었고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깊었다. 어두운 숲의 한 켠에 서서 가만히 있으면 나무 기둥을 스쳐지나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 소리가 차분하게 내 몸을 타고 다시 옆의 나무로 넘어간다. 하늘 높이 있는 나뭇가지와 바닥에 앉아 있는 작은 풀 잎 모두 그 바람을 타고 숲의 이곳저곳을 흘깃흘깃 구경한다.

 서서히 해가 지가 시작하더니 밤이 매우 빨리 찾아왔다. 아직은 별도 달도 없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이 낯설다. 낮에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이다. 미세한 소리들이 그의 온 몸을 자극한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멀리서 희미한 불 빛 여러 개가 내가 있는 쪽을 향한다. 그리고 이내 분주한 바퀴 소리가 온 숲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몇 발자국 뒤에 있는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그 불 빛 만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숲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들을 지켜 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그에게는 3년 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와 함께 왔다. 점심이 지났지만 진한 안개가 모든 것을 에워싸고 있어서 모든 것이 축축하고 흐릿하다. 자동차 짐 칸을 열고 나란히 숲을 향해 앉았다. 좀처럼 둘의 어깨가 가까워지지 않는 걸 보니 아직은 서로가 조금 서먹서먹 한가보다. 그는 먼 숲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이곳의 숲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헤매고 있다. 사진으로 봤던 그 나무들이 저기 있는 게 보이지만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다. 철조망으로 거칠게 막아 놓은 곳이 하나 보이지만 저곳이 입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 사유지이므로 무단 침입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하얀색 나무 판에 붉은 글씨로 적어 놓은 안내문만이 이곳저곳에 붙어있을 뿐이다. 그나마 입구로 보이는 철조망 건너로 좁은 길이 보이지만 뛰어 넘을 용기가 없다. 또 다시 짧지만 무척이나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 서성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다.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내 뒤를 3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회색 승용차에 탄 아줌마도 창문을 조금 열어 먼 나무숲을 보며 괜스레 서 있는 나를 천천히 훑고 지나간다. 한 숨을 크게 내쉬며 철조망 사이에 난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아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연기를 찾아 길을 나섰다. 이곳저곳을 지나고 한참을 돌아서야 커다란 나무들로 가려진 작은 공장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둔탁하게 베인 소나무들이 잔뜩 널려 있었고 그 옆으로는 소나무가 파쇄되어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시커먼 햇빛 가리개로 덮여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서 보고 싶지만 울타리로 막혀 있다. 어디선가 커다란 기계가 웅장하게 시동 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이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내린다. 숲의 눈은 도시의 눈보다 내리는 속도가 더디다. 그래서 눈 하나하나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눈이 숲의 가장 밑에 자리잡은 붉은 흙 위에까지 차분히 내렸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몇몇 나무들은 자연스레 휘어 바닥을 향하지만, 이내 털어내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쌓여 있던 눈 먼지들이 회오리처럼 휘날리며 나무들의 사이사이를 타고 숲의 이곳저곳을 넘나든다. 하지만 그 모습이 사납지는 않다. 가끔은 내 몸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기도 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눈 위를 걷고 있다. 이 길이 어디까지 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지금은 모두 눈으로 덮인 하얀 길이지만, 원래 이 길은 시멘트 길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회색의 길은 끝이 나고 붉은 흙으로 다듬어진 길이 나온다. (내가 이 길을 아는 건 몇 일전, 붉은 길을 따라 오랜 시간을 걸었지만 끝내 어두워져서 되돌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 지난 번 되돌아와야만 했던 곳을 지나니 하늘이 서서히 보이면서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숲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그 소리는 선명해지더니 마치 살아있는 소리처럼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 숲에는 원래 길이 없었어. 우연히 숲에 발을 디디게 된 나 역시 길을 잃어 헤매는 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하지가 않았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왔던 곳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곳에 있는 나무와 작은 풀, 돌, 흙마저 너무 편안했어. 그래서 그 이후로 매일 숲의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했지. 하루는 숲에서 밤을 지내기로 마음을 먹고 별을 보려고 우리가 있는 여기 자동차 짐 칸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거야. 깜깜한 밤에 숲에 혼자 있는 건 아무리 용감해도 무서운 거거든. 그런데 뭔가가 내 옆을 순식간에 휙 지나가는 거야. ‘저게 무슨 소리일까’ 라는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어. 나 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고 바로 뭔가가 나타났다고 생각을 해봐.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 때 이 숲에서의 내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 어쩌면 이들에게 내가 낯선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말이야. 하지만 이후에도 난 자주 숲에 왔어. 보고 싶은 게 많았거든. 그러던 어느 날, 늘 내가 있던 그 자리에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먼저 와서 전기 톱으로 나무들을 사정없이 베고 있었어. ‘여기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 소리를 쳤지. 그 날, 숲의 주인이 그들 같았어. 그 뒤로 한동안 숲에 오지 못했어. 왜냐면, 그 사람들과 다시 마주치는 것도, 그 사람들이 베어낸 숲을 보는 것도 모두 두려웠거든. 그 날, 그 사람들은 그곳에 있던 나무들을 거침없이 자르고 트럭에 실어서 분주히 숲의 밖으로 나갔어. 내가 있던 그 숲이 그들이 다녀간 이 후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 모두 잘려서 팔려 나간거야. 그 중에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녀석들은 그냥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그들 모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와 같이 있던 녀석들이었는데 그렇게 사라지고 나니까 다시 이곳에 오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린거야…“

 

 녹이 벌겋게 슨 거칠고 비좁은 철조망을 겨우 통과했다. 옷이 몇 군데 찢어졌다. 앞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30여분을 걸어 들어가니 아주 멀리 희미하게 바다가 보였고 내 발 밑으로 거대한 숲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꽤나 높은 곳 인가보다. 그 숲의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는 밤나무의 모습을 잃은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온갖 종류의 넝쿨들이 밤나무를 휘감았다. 밤나무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저게 나무일거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넝쿨들이 나무 위를 에워싸 그 모습이 마치 봉긋 솟아 있는 무덤처럼 보인다는 사실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원래 이곳에 있던 녀석들이 아닌 것 같다. 이들 주위의 나무들과 매우 다르다. 누군가 심어 놓은 ‘먼나무’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자라는 풀들 역시 누군가 모두 베어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가보니 이번엔 작은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먼나무’에는 얼어 죽지 않길 바라는 듯 굵은 천을 덧대어 빨간 나일론 끈으로 칭칭 감아 놓았고 ‘소나무’에는 예쁘게 자라길 바라는 듯 줄기 곳곳을 철사로 고정했다. 원래 이곳에는 삼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원래 있던 주위의 삼나무들 역시 잘렸다. 커다란 삼나무가 계속 살아 있으면 먼나무와 소나무가 햇빛을 받지 못해서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나를 바라보는 심어진 나무들도, 잘린 삼나무도.

 

 거대한 기계의 주둥이가 뭔가를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내뱉는다. 잘린 소나무가 갈려서 나오는 소나무 조각이다. 작은 소나무 조각들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쌓이고 쌓여 작은 산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산의 일부를 차에 실어 어딘가로 나선다.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 조각들은 바이러스를 간직한 채 다른 곳으로 옮겨져 뿌려지고 새로운 그곳에서 다시 바람을 타고 숲의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숲의 나무들은 또다른 무언가에 의해 죽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불 빛과 함께 순식간에 여러 대의 오토바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숲의 여기저기를 할퀴면서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감히 그들 앞으로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얼굴을 비추면 무참히 잡아 먹힐 것 같다. 굉장한 먼지를 일으키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깊게 패였다. 모두가 지나간 후 비로소 한 걸음을 내어 바퀴 자국이 선명한 길을 애써 신발로 지워본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창백한 하얀색으로 칠해진 쇠 울타리가 길을 막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삐이이삐이이-삐이이-삐이이-삐이이…” 나를 향해 외치 듯 신경질적인 전자음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날카로운 소리가 더 커진다. 소리가 나오는 커다란 기계 위에 설치된 작은 카메라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숲의 끝에 서 있는 나를 응시하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애써 차가운 손을 비벼대며 고개를 돌려 경계의 태도를 푸는 것이다. 다시 하얀 숲과 가까워지자 소리가 작아진다.

 

숲은 그렇게 뾰족하고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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